「안청리 풍천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550
한자 安淸里風天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염승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9년 1월 9일 - 「안청리 풍천대」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마을 박형규의 이야기를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안청리 풍천대」 『광주의 전설』에 수록
관련 지명 안청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도보기
채록지 안청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전설
주요 등장 인물 박노술
모티프 유형 망국|충심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마을에 세워진 풍천대에 관한 지명유래 전설.

[개설]

일제 강점기 석음(石陰) 박노술(朴魯述)[1851~1917]이 세운 풍천대(風天臺)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마을에 거주하는 박형규[남, 75세]의 이야기를 채록하여, 1990년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하였다.

[내용]

안청마을은 동네 터가 소가 누운 형국이어서 마을 곳곳에 소와 관련된 이름이 많았고, 누운 소는 흔히 은거한 현자의 모습으로 비유되었다. 개안 남쪽에 산등성이가 있는데, 박노술은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인 비룡대(飛龍臺)에 풍천대를 세웠다. 풍천대라는 이름은 『시경(詩經)』에 있는 「비풍(悲風)」과 「하천(下泉)」이란 시편에 언급된 '풍(風)' 자와 천(泉)' 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이는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의 기세에 눌린 상황에서 약한 나라의 현인이 자신의 어진 임금을 잊지 못하여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박노술은 조선이 망한 것을 원통히 여겨 풍천대 출입을 삼갔다.

일제 강점기에 박노술은 일본 사람들이 선비들에게 준 은사금을 기어이 받지 않아서 여러 번 경찰서에 잡혀갈 정도였다. 이후 박노술풍천대에서 은거하였는데, 풍천대에서 매년 인근 선비들이 모여 강독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안청리 풍천대」풍천대가 세워진 계기를 서술한 이야기로, 모티프는 '망국에 대한 충심'으로 볼 수 있다. 박노술은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된 일을 슬퍼하며, 『시경』의 시편 중에서 각각 '풍(風)' 자와 천(泉)' 자를 따서 풍천대로 짓고 은거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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