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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경주김씨 재실. 건향각은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향등마을 뒤편에 있다. 경주김씨 죽헌공파 종친회에서 1972년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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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 있는 파평윤씨 사우인 서강사의 강당. 경모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 있는 서강사(瑞岡祠)의 강당(講堂)이다. 서강사는 파평윤씨 문중의 사우로 시조인 윤신달(尹莘達), 후손인 윤관(尹瓘), 윤언이(尹彦頤), 윤위(尹威), 윤돈(尹敦), 윤보(尹珤)의 6명을 모시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파평윤씨 문중에서 광주광역시에 파평윤씨의 사우가 없음을 알고 건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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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강학 공간. 경의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으며, 1930년 소해정(蘇海亭)이란 이름으로 소해(蘇海) 노종룡(盧種龍)[1856~1940]이 건립하였다. 노종룡은 최익현(崔益鉉)[1833~1907], 송병선(宋秉璿)[1836~1905] 등으로부터 학문을 배웠고, 구한말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여러 차례 상소를 올리면서 을사오적(乙巳五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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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월봉서원에 있는 조선 후기 기대승의 문집을 발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 고봉문집목판(高峰文集木板)은 조선 시대 대표 성리학자인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문집을 발행하기 위해 1629년(인조 7) 기대승의 손녀 사위인 조찬한(趙纘韓)이 목판본을 만들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월봉서원에 있으며, 1992년 3월 16일 광주광역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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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문. 고씨삼강문은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다.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고경명의 동생인 고경형(高敬兄),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高從厚)[1554~1593]와 고인후(高因厚)[1561~1592], 딸인 영광유생 노상룡(盧尙龍)의 부인, 고경명의 조카 고거후(高巨厚)의 부인인 광산정씨, 고경명의 손자 고부금(高傅金) 총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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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에 있는 개항기 광산이씨의 효열각. 광산이씨효열각은 음성박씨 박성립(朴性立)의 부인인 광산이씨의 효열(孝烈)을 기리고자 세운 비각이다. 광산이씨는 1795년 출생하여 1819년 박성립과 결혼하였으나,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남편 박성립이 죽었다. 그러자 광산이씨는 남편을 따라 삶을 마감하였다. 1832년 광주 지역 유림들이 광산이씨의 효열을 조정에 천거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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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있는 남촌 윤지화와 그 후손을 모신 사우. 광유재(光裕齋)는 조신 중기 문신인 남촌(南村) 윤지화(尹之和)[1476~1558]와 그 후손을 모신 사우이다. 윤지화는 조선 연산군 때 호조정랑으로 재임하다가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으로 와서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박상(朴祥)[1474~1530] 등 당시 광주 지역 유학자들과 교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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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광주학생운동을 시작한 곳과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 1929년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은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 도립전남사범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전개되었다. 광주고등보통학교는 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는 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는 지금의 광주자연과학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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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조선시대 광주 지역 중등교육 및 유교 교화를 담당하였던 기관. 광주향교(光州鄕校)는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으며, 조선시대 광주 지역의 관학(官學) 중심 중등교육과 지역민 교육을 담당하고, 공자와 여러 유학자들의 제사를 지내는 등 성리학과 유학 관련 일을 진행하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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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현대의 사우. 남동영당은 '남동사(南洞祠)', '남동영각(南洞影閣)'으로도 불리우며, 만취(晩翠) 심원표(沈遠杓)[1853~1939]와 아들인 남석(南石) 심종대(沈鐘大)[1882~1959], 손자 주봉(柱峰) 심한구(沈翰求)[1898~1974] 3명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심원표는 구한말 유학자로 항일의병장을 도왔으며, 일제가 주는 은사금을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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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문. 문장갑과 문장섭 형제는 지극한 효자였다. 아버지가 병환에 들자 2년 동안 정성으로 간호하였는데, 많이 아플 때는 본인들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례(喪禮)의 제도에 따라서 장사를 지냈다. 주변 마을 사람들로부터 효자라고 칭송되어지고, 나라에서 문장갑, 문장섭 형제의 이와 같은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66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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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있는 조선 시대 문신 눌재 박상의 문집인 『눌재집(訥齋集)』을 발행하기 위한 만든 목판. 눌재집목판각(訥齋集木版刻)은 1547년(명종 2) 임억령(林億齡)[1486~1568]이 처음으로 목판을 만들었으며, 1684년(숙종 20) 이사명(李師命)[1647~1689]이 다시 판각을 시작하여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중단되었다가, 1694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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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행주기씨 사우. 담숙재는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 의병장인 기의헌(奇義獻)[1587~1653]을 모신 사우이다. 기의헌은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후손으로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신촌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군사를 모으고 군량미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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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오호석과 송시열을 모신 사우. 대명사는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오호석(吳孝錫)[1620~1696]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을 모신 사우이다. 오호석은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청에 항복을 하자 1637년[인조 15] 관직을 버리고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 가마마을 뒤편 산으로 와서 영사재(永思齋)를 짓고, 성리학을 연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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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우. 도림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 입구에 있으며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 난와(難窩) 오계수(吳繼洙)[1843~1915],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1851~1931]을 모신 사우이다. 기정진은 현재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으로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1866[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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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심덕부, 심징, 심선, 심풍, 심광헌을 모신 사우. 동호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만취정(晩翠亭), 남동영당(南洞影堂)과 같이 있다. 심덕부(沈德符)[1328~1401], 심징(沈澄)[?~1432], 심선(沈璿)[?~1467], 심풍(沈灃)[1482~?], 심광헌(沈光憲)[1541~1593] 5명을 기리는 사우이다. 심덕부는 고려 말 조선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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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하동정씨 재실. 만석재는 광주광역시 하동정씨의 재실로 1917년 정천익(鄭天翼)이 하동정씨의 정자인 삼호정(三湖亭)을 증축하면서 삼호정 옆에 세웠다. '一'자형 2칸 건물이었던 삼호정 바로 옆에 만석재를 지어서 'ㄱ'자형 건물을 만들고, 관리가 용이하도록 서로 연결하였다. 정윤길정려가 만석재의 대문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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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사당. 명동영당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었으며 오재수(吳在洙)를 배향한 사당이다. 오재수는 대한제국 시기에 항일운동가이자 유학자인 오계수(吳繼洙)[1843~1915] 제자로, 1916년 동문인 오준선(吳駿善)·오정선(吳禎善)과 함께 스승인 오계수의 글을 모아 『『난와집』를 만들고 발문(跋文)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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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전라남도와 광주 지역 출신 장군들을 기리는 사우. 무광사는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있으며, 이순신(李舜臣)[1545~1598]과 김덕령(金德齡)[1567~1596], 김천일(金千鎰)[1537~1593], 노인(魯認)[1566~1622], 강항(姜抗)[1567~1618], 정운(鄭運)[1543~1592], 송희립(宋希立)[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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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일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의 성터. 광주광역시 무진고성지(武珍古城址)는 장원봉[386m]을 중심으로 장대봉[350m]과 제4수원지 산 능선을 따라 조성되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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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에 있는 개항기 효자문. 밀양손씨삼효문은 1870년(고종 7) 밀양손씨의 손맹옥(孫孟玉), 손맹대(孫孟大) 형제와 손맹대의 아들인 손양복(孫陽復)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손맹옥과 손맹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다. 부모님이 깊은 병환에 들자, 손맹옥과 손맹대는 넓적다리 살을 잘라 고아서 부모님께 드렸다. 손양복은 손맹대의 아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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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던 개항기 사우. 봉산사는 한말 유학자였던 고광선(高光善)[1855~1934]을 모신 사우였다. 고광선은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북촌에서 태어났으며, 기정진(奇正鎭)[1798~1879]과 나도규(羅燾圭)[1826~1885]로부터 유학을 배웠으며, 명성이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길 원하였다. 고광선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세상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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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있는 윤지화를 모신 사우. 분산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있으며, 조신 중기 문신인 남촌(南村) 윤지화(尹之和)[1476~1558]를 모신 사우이다. 윤지화는 조선 연산군 때 호조정랑(戶曹正郎)으로 재임하다가 중종반종이 일어나자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으로 와서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박상(朴祥)[1474~1530] 등 당시 광주 지역 유학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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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강당. 빙월당은 월봉서원의 강당(講堂)이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 월봉서원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 불리던 이름이다. 월봉서원은 조선시대 대표 성리학자인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을 모셨다. 기대승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4개의 마음[사단(四端), 곧 측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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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사암 박순의 문집인 『사암집(思庵集)』을 발행하기 위한 만든 목판. 사암집목판각(思庵集木版刻)은 1648년(인조 26) 사암(思庵) 박순(朴淳)[1523~1589]의 후손들이 박순의 문집인 『사암집(思庵集)』을 발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이다. 1857년(철종 8) 중간하였고, 총 180장, 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눌재집목판각(訥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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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제단. 서석단은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 신촌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문선(文璿)과 기준(奇遵)을 모신 제단이다. 문선과 기준은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1482~1579]의 제자들로, 기준은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화를 입은 기묘명현(己卯名賢) 중의 한 명이다. 1929년에 남평문씨 문중과 행주기씨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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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달성서씨 재각. 서씨재각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에 있으며 달성서씨의 재각이다. 1975년 진제마을의 달성서씨 문중에서 선조들을 기리고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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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춘설헌의 옛 이름인 석아정과 오방정의 이름을 적은 현판. 석아정(石啞亭)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최원순(崔元淳)이 지은 정자로, 최원순이 건강이 안 좋아 전라남도 광주로 와서 지낼 때 만든 건물이다. 석아정의 글씨는 일제강점기 서예가 김돈희(金敦熙)가 적었다. 이후 전라남도 광주에서 한센병 환자를 구호하고, 독립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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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송하동에 있는 탐진최씨 재실. 송하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송하동 일신마을에 있으며 탐진최씨 문중의 재실이다. 송하재가 있는 자리는 원래 심영택(沈英澤)[1810~?]과 심환택(沈煥澤) 형제가 지은 건물이 있었다. 건물 안에는 심영택이 지은 기문 및 심계택(沈啓澤)이 지은 기문 등이 있었다. 1960년 탐진최씨 문중이 선조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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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창녕조씨 재실. 수덕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으며, 창녕조씨 문중의 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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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에 있는 개항기 천안전씨 사우. 숭모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장등마을 입구에 있다. 천안전씨 문중의 재실로 전구생(全俱生)과 전자명(全自明) 부자를 모신 사우이다. 전구생은 광주목사를, 전자명은 상주목사를 지냈다. 천안전씨 문중에서 전구생과 전자명을 기리고자 1884년 전구생과 전자명 부자의 묘소가 있는 입구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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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흑석동에 있는 조선시대 중기 문신 이신의를 모신 사우. 시정유애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흑석동에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석탄 이신의(李愼儀)[1551~1627]를 모신 사우이다. 이신의는 임진왜란 때 향군(鄕軍) 300명과 함께 왜군을 무찔렀으며, 1596년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였다. 이후 광주목사를 역임하였으며, 광해군의 인목대비 유폐와 영창대군 죽임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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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류상렬을 모신 사우. 신호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신촌마을에 있으며, 관암(寬庵) 류상렬(柳庠烈)[1880~1962]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1967년에 건립하였다. 류상렬은 1880년 현재의 동호동 신촌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문리(文理)가 트였다. 한일병합 이후 고향에서 향리 자제들을 가르치며 학문을 닦았다. 이후 문화류씨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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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밀양박씨 재실.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노대마을은 밀양박씨 및 김해김씨, 함안윤씨 집성촌이다. 밀양박씨 문중에서 자신들의 선조를 기리기 위하여 1968년 노대마을 건너편 구릉지대에 양개재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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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문. 양씨삼강문은 광산구 박호동 박뫼마을 입구에 있다. 박뫼마을은 양산숙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양산숙과 양산숙의 어머니인 죽산박씨(竹山朴氏), 형인 양산룡(梁山龍)[1552~1597], 아우인 양산수(梁山岫), 누이이자 김광운(金光運)의 부인인 제주양씨, 양산숙의 부인인 광산이씨 6명의 충(忠), 효(孝), 열(烈)을 기리는 정려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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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양양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으며 김해김씨 문중에서 자신들의 선조를 기리기 위하여 1958년에 건립하였다. 현재 노대동 신기마을은 김해김씨와 함안윤씨의 집성촌이다. 이후 노대동 지역 도시개발로 인하여 현재 자리에 다시 건물을 세우고, 주변에 있는 비석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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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에 있는 어등산을 중심으로 한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활동의 중심지. 어등산은 평야가 펼쳐진 전라남도 서부 지역에서 높은 곳이어서 주변 지역의 관측이 용이하고, 일본 군경의 추적을 파악하고 조치하는 데 좋은 장소였다. 또한 광주, 나주, 함평, 장성, 영광 등으로 다른 곳으로 쉽게 이동이 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한말 호남의병과 일본 군경 간의 크고 작은 전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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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광산이씨 재실. 여재각은 광산이씨 문중의 재실로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90~1453]와 이선제의 아버지 이일영(李日英), 이선제의 아들인 이시원(李始元) 및 한원(翰元)을 모시고 있다. 1960년에 광산이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원산동 만산마을은 광산이씨 집성촌으로 필문이선제부조묘(畢門李先齊不祧墓)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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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광산김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와 비각. 열녀숙부인광산김씨지려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 평지마을로 가는 도로변에 있다. 광산김씨는 정일룡(鄭日龍)의 부인으로 시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피면서 효도를 다하고, 남편을 극진히 모셔 열행을 다하였다. 나주정씨 문중에서 광산김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문중마을인 지정동 평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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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열부학생박상승처유인김씨지려(烈婦學生朴相升妻孺人金氏之閭)는 조선 후기 박상승(朴相 升)의 부인인 광산김씨의 열행(烈行)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각이다. 광산김씨는 박상승과 결혼한 후 한 달 만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하자 시부모가 그 뜻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친정에 보냈으나, 친정 앞 강물에 몸을 던졌다.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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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하남정씨 문중 재실 영모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하남정씨(河南程氏) 문중 재실이다. 영모재가 있는 진월동은 하남정씨의 집성촌이었다. 하남정씨의 시조는 원나라 사람인 정사조(程思祖)로 공민왕의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와 같이 개경으로 왔다. 정사조의 아들인 정광(程廣)이 현재의 진월동으로 왔으며, 정광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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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사우. 영모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으며, 조선 중기 학자이자 의병장인 송제민(宋齊民)[1549~1602]을 모신 사우이다. 송제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천일(金千鎰), 양산룡(梁山龍), 양산숙(梁山璹)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김덕령 휘하에 들어가서 활약하였다. 왜적을 물리치는 방안을 적은 상소를 여러 번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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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개항기 순흥안씨 재실. 영사재[운림동]는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순흥안씨 문중의 재실로,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남강(南岡) 안공(安珙)[1447~1530]을 모시고 있다. 안공은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1490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다. 1521년[중종 16] 신사무옥이 일어나 안공의 사촌인 당시 좌의정인 안당(安瑭)과 안당의 아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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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문. 오효열정문(五孝烈旌門)은 '서산유씨효렬정려(瑞山柳氏孝烈旌閭)'로 불리며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다. 서산유씨 일가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고자 나주목사가 조정에 추천하여 세운 정려문이다. 1615년(광해군 7)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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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용곡동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성터.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곡동 기곡저수지 북쪽 복룡산[228m] 정상 부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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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원. 2021년 현재 운리영당 명칭은 벽진서원(碧津書院)이다. 운리영당은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임진왜란 공신인 (懷齋) 박광옥(朴光玉)[1526~1593]을 모신 사우이다. 박광옥은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기대승(奇大升)·박순(朴淳)·노사신(盧思愼) 등과 학문 교류를 나누었다. 현재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황산대첩비를 세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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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개항기 사우. 원당영각(元堂影閣)은 조선 전기 무관인 오자치(吳自治)[1426~?]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오자치는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으로 책봉되고, 1476년(성종 7) 공신의 포상으로 초상화를 받았다. 1892년 영정을 보관하기 위하여 오자치의 나주오씨 후손과 지역 유림들이 원당영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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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오선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의령남씨와 광산김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의령남씨‧광산김씨 효열정려는 하성채(河聖采)의 처 효부 의령남씨(宜寧南氏)와 하달채(河達采)의 처 열녀 광산김씨(光山金氏)의 효열정려각이다. 의령남씨는 시아버지가 병환에 들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시아버지께 드리고, 다리살을 잘라 약에 타서 드렸다. 광산김씨는 남편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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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광산노씨 재실. 일신재(日新齋)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일곡마을에 있으며, 고려 후기 문신인 노준공(盧俊恭)[1340~1397]과 조선 중기 문신인 노희서(盧希瑞)[1558~1592]를 모신 사우인 절효사(節孝祠)와 같이 있다. 원래 자리에는 사우가 있었는데, 사우가 철폐되면서 일신재로 이름을 바꿨다. 일신은 대학(大學)에 있는 '苟日新日日新又日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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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과 원산동 경계에 조성된 청동기시대 집터와 통일신라시대 석곽묘[돌덧널무덤]. 임암동.원산동선사주거지및석곽묘(林岩洞院山洞先史住居址-石槨墓)는 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과 원산동 경계를 이루는 구릉지대에 형성된 청동기시대 집터와 통일신라시대 돌덧널무덤 유적이다. 1977년 발굴 결과 풍화된 화강암반을 20cm 정도 파고 들어가 축조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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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문. 정윤길정려는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으며, 송월당(松月堂) 정윤길(鄭潤吉)[1723~1802]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95년에 세웠다. 정윤길은 현재의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서 태어났으며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늙은 부모님을 위하여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극진한 정성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학문을 익혔다. 정윤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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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는 개항기 정재요 부인 밀양박씨를 기리기 위한 사우. 정재요밀양박씨효열각은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으며, 1905년 정재요(鄭在堯)[1838~1879]의 부인 밀양박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정재요는 정윤길(鄭潤吉)의 증손으로, 시문을 잘 쓰고 명필이었다. 밀양박씨는 정재요가 병에 걸리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정재요에게 주면서 극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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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고경명의 문집을 발행하기 위한 만든 목판. 제봉문집목판(霽峰文集木版)은 1617년(광해군 9)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의 막내아들인 고용후(高用厚)가 만들었으며 총 481장, 9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경명의 후손인 장흥고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 정기관에 소장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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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에 있는 개항기 천안전씨 사우. 종묘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장등마을 입구에 있다. 천안전씨 문중의 재실로 전구생(全俱生)과 전자명(全自明) 부자를 모신 사우이다. 전구생은 광주목사를, 전자명은 상주목사를 지냈다. 천안전씨 문중에서 이들을 기리고자 1884년 전구생과 전자명 부자의 묘소가 있는 입구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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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우. 지산재는 본래 광주 지역 경주최씨 문중에서 세운 최치원(崔致遠)[857~?]을 배향한 지산사(芝山祠)의 강당이었다. 1868년[고종 5] 영당만 남고 모두 훼철되었으나 1922년 강당이 복설되고 지산재로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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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있는 조선 후기 광주목사 신익전의 선정(善政)을 기린 비. 신익전(申翊全)[1605~1660]은 1636년(인조 14)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나라에 볼모로 다녀왔다. 1645년(인조 23년) 광주목사로 부임하면서 환곡(還穀)의 문란을 바로잡고, 군역을 올바르게 진행하였다. 이에 전라도 광주 지역 백성들이 신익전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선정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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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탐진최씨 재각. 탐진최씨 재각은 진월제를 지나서 제2순환로를 건너 야산 밑에 있다. 1921년에 건립되었으며 재실 앞에 '증승정원좌승지석초최공묘비(贈承政院左承旨石樵崔公墓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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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전상의를 배향한 사우. 충민사(忠愍祠)는 조선시대 무신인 구성(龜城) 전상의(全尙毅)[1575~1627]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우이다. 전상의는 현재의 광주광역시 서구 구동에서 태어났으며,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평안남도 안주군] 전투에 참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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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 김덕령을 배향한 사우. 충장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의병장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1567~1596]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김덕령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인 김덕홍(金德弘)[?~1593]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고경명(高敬命) 및 권율(權慄) 휘하에서 전라도와 영남 서부 지역을 방어하였다. 1594년 장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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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우. 충현각은 광주광역시 남구 동호동 신촌마을 입구에 조신 초기 문신인 서산(西山) 유자미(柳自湄)[? ~ 1462]를 모신 사우이다. 유자미는 1451년(문종 1)에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에 있던 중 1455년(단종 3)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선양(禪讓)하자, 관직을 나와 해주와 양주에 숨어 지내며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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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조선 후기 비와 비각. 충효동정려비각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충효마을 입구에 있으며, 김덕령(金德齡)[1567~1596]과 김덕령의 부인 흥양이씨, 김덕령의 형 김덕홍(金德弘)[?~1593]과 아우 김덕보(金德普)[1571~1627]의 충효와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와 비각이다. 김덕홍은 고경명 휘하에 의병으로 참여하여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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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 고경명 등을 배향한 사우. 포충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高從厚)[1554~1593], 고인후(高因厚)[1561~1592] 및 금산전투에서 같이 순절한 유팽로(柳彭老)[1554~1592], 안영(安瑛)[1564~1592]을 배향하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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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탐진최씨 재실. 현승재는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 있으며 탐진최씨 문중의 재실이다. 선교동은 탐진최씨 집성촌이었으며, 문중에서 탐진최씨의 선조를 기리고자 1937년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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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우. 화담사는 고려 멸망 후 조선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현 중 한 명인 묵은(黙隱) 정희(鄭熙)[1350~?]와 정희의 아들 열지(悅之) 정초(鄭招)[?~1434], 정초의 아들로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참여하고 이후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신(佐翼功臣)에 오른 경부(敬夫) 정수충(鄭守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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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지씨문중 재실. 화망재는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 화산마을 입구에 있으며 지씨문중의 재실이다. 광주광역시 화산마을은 지씨문중의 집성촌으로, 지씨문중에서 본인들의 선조를 기리기 위하여 화산마을 입구에 1937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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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김우생과 김문기를 모신 사우. 화엄사(花嚴詞)는 조선 초기 문신인 김우생(金佑生)[1372~1457]과 김문기(金文起)[1399~1456]를 배향한 사우이다. 김우생은 조선 태종 이방원을 도와 1400년[정종 2] 박포(朴苞)의 난[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였다. 이후 1456년[세조 2]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었고, 1457년[세조 3] 단종이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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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벽진서원에 있는 회재 박광옥의 문집인 『회재유집(懷齋遺集)』을 발행하기 위해 만든 조선 후기의 목판. 회재유집목판(懷齋遺集木板)은 박광옥(朴光玉)[1526~1593]의 문집인 『회재유집』을 발행하기 위해 1799년(정조 23) 박광옥의 후손인 박성일(朴性一)이 목판본을 만들었고, 이후 1847년(헌종 13) 부록이 추가되었다.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벽진서원에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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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영광김씨 효열을 기리는 비와 정려각. 효열부증숙인영광김씨려는 박세방(朴世芳)의 부인인 영광김씨의 효열을 기리는 비와 정려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백길마을 입구에 있다. 영광김씨는 남편인 박세방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리자, 낮에는 약을 구하는 데 정성을 다하고, 밤에는 자신이 남편 대신 병에 걸리게 기원하면서 남편을 보살피고,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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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청주한씨 재실. 효우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에 있으며 청주한씨 문중의 재실이다. 현재 진월동 진제마을은 밀양박씨와 청주한씨 집성촌이었다. 효우재는 청주한씨 문중에서 선조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건립하였다. 그 옆에는 '청주한씨쌍효비(淸州韓氏雙孝碑)'가 있었다. 청주한씨쌍효비는 한필오와 한필용 형제의 지극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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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각. 효자정계흥지려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 봉정마을 입구에 있다. 1875년 나주정씨 문중에서 정계흥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정계흥은 1780년(정조 4) 광주광역시 봉정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아버지가 병환에 들자 한겨울에 강의 얼음을 깨서 잉어를 잡아 봉양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아버지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