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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192
한자 新聞
영어공식명칭 Newspaper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은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5년 8월 31일 - 『전남신보』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5년 10월 10일 - 『광주민보』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6년 3월 - 『조선중보』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6년 3월 21일 - 『전남신보』에서 『호남신문』으로 제호 변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6년 7월 - 『광주민보』에서 『동광신문』으로 제호 변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7년 7월 - 『조선중보』에서 『광주신보』로 제호 변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2년 2월 10일 - 『전남일보』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0년 9월 26일 - 『전남매일신문』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1년 5월 23일 - 『광주신보』 폐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2년 8월 30일 - 『호남신문』 폐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0년 12월 1일 -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이 통폐합되어 『광주일보』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8년 10월 10일 - 『무등일보』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9년 1월 7일 - 『전남일보』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9년 6월 29일 - 『전남매일』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1년 1월 29일 - 『광주매일』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0년 6월 - 『전남도민일보』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0년 9월 22일 - 『호남일보』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0년 11월 - 『호남매일』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6년 3월 23일 - 『남도일보』 창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6년 10월 13일 - 『광주매일』에서 『광주매일신문』으로 제호 변경

[정의]

광주광역시 지역 주민에게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제공해 주는 연속 간행물.

[개설]

광주 지역 신문의 특성은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사회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신문의 수용이 다른 지역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둘째, 신문이 지역민 또는 지역사회의 요구나 필요성에 의해 출현했다기보다는 정치적 산물이었다. 셋째, 지역 신문의 구도 및 그 변화가 정치 권력에 좌우되어 사회적 기능의 수행이 크게 위축되어 있었다. 넷째, 보수적 신문 구도가 정착되었다.

[변천 및 현황]

광주 지역에서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벗어나기까지 순수한 지역 신문의 출현은 없었다. 서울에서 발행된 신문들의 지사 체제로 언론 활동이 전개된 것이 고작이었다. 1910년에 『광주신보』가 창간되고, 1941년에 일제가 강제한 '1도(道) 1사(社)'의 산물로 『전남신보』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 신문들은 일본어 신문이었다.

광복 직후 광주 지역에서는 『전남신보』[뒤에 『호남신문』으로 바뀜], 『조선중보』[뒤에 『광주신보』로 바뀜], 『광주민보』[뒤에 『동광신문』으로 바뀜], 『건국특보』, 『건국신문』 등이 창간되었다. 그러나 좌우 세력의 첨예한 갈등으로 신문 형성 초기부터 정치이념에 좌우되고, 그 생명이나 지속성도 정치적 변화에 예속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를 낳았다.

1948년 8월 미군정이 끝나고 남한만의 단독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수적인 언론 구도 위주로 재편되었다. 광주 지역의 언론은 『호남신문』, 『광주신보』, 『동광신문』으로 대표되었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에는 『호남신문』과 『광주신보』만 명맥을 유지하였다. 보수 우익을 표방하였던 『동광신문』은 경영난 등으로 폐간되고, 대신에 『전남일보』가 창간되었다.

195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호남신문』과 『광주신보』는 경영난과 조직 내부 갈등 등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전남일보』가 전면에 부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0년 9월 『전남매일신문』이 창간되어 광주 지역 언론은 이들 두 신문이 주도하게 되었다. 한편, 1959년 9월에 『남도일보』라는 신문이 창간되었으나,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폐간되었다.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1961년 5월 23일 「신문통신사시설기준령」을 발표하고 언론 단속에 들어갔으며, 1964년 「언론윤리위원회법」을 발의하기도 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내걸었던 지배 이념인 '근대화'를 선도하는 언론을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광주 지역에서는 『호남신문』과 『광주신보』가 폐간되고,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만 남았다.

제5공화국 정권 하에서는 일도일지(一道一紙) 원칙에 따라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이 합쳐져 『광주일보』로 창간되었다. 『광주일보』는 1988년 이후 언론 관계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광주 지역 언론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신군부는 1980년 7월 30일 한국신문협회로 하여금 '언론 자율 정화와 언론인 자질 향상에 관한 결의'를 하도록 하고, 800여 명의 언론인을 강제 해직시켰다. 또한 언론 기관의 통폐합, 신문의 증면, 처우 개선, 신문과 방송의 독점 금지, 새 통신사 설립, 지방 주재기자 철수 등을 언론사가 스스로 표명하도록 하였고, 언론을 정부가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담은 「언론기본법」을 마련하였다.

제5공화국 정권의 종식과 「언론기본법」의 개폐에 따라 신문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확보되었다. 또한 신문 창간이 '신고제'로 바뀌면서 광주 지역에서는 기존의 『광주일보』 외에 4개의 일간신문이 새로 나왔다. 1988년 10월에 『무등일보』, 1989년 1월에 『전남일보』[1952년에 창간된 『전남일보』와 무관], 1989년 6월에 『전남매일』[1960년에 창간된 『전남매일신문』과 무관], 1991년 1월에 『광주매일』이 창간되어 모두 5개 신문들의 경쟁 체제가 이루어졌다. 여러 신문들을 통해 다양하고 풍부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경제 상태가 열악한 지역인 광주에서 여러 언론이 이익 창출을 위해 과도한 경쟁을 벌여 선정적 언론이 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 이후에 언론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환경은 더욱 확대되었고, 새로운 신문들이 속속 창간되어 '다신문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2000년 6월에 『전남도민일보』가 창간되었고, 2000년 9월에 『호남일보』[1961년 전라북도에서 창간된 『호남일보』와 무관]는 지역 일간지로 발행을 시작하였다. 『남도일보』는 1998년 5월 창간된 『광주타임스』를 전신으로 하고 있는데, 2005년 창사 8주년을 기해 『남도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였였다. 2006년 10월에 『광주매일』은 제호를 『광주매일신문』으로 변경하였다.

[의의]

광주의 지역 신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출발은 늦었으나, 시대적 부침에도 불구하고 광주 지역의 소식을 전하고 사회적 영향을 미쳐 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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