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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잠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441
한자 養蠶業
영어공식명칭 Sericultural Industry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장섭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누에를 길러 누에고치에서 생사를 추출하여 비단을 만드는 산업.

[개설]

우리나라는 기후가 대륙성으로 우량이 적고, 봄 가을로 날씨가 건조하며, 양잠에 필요한 뽕나무가 전국 각지에 식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잠이 행해질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본격적인 양잠을 하게 된 것은 1920년대 이후이며 일본이 한일합방 이후 그들의 원료 획득을 위하여 우량 잠종을 수입하고 상전도 개량하여 광주부 시대에 생산 잠견은 한때 2천 석을 상회하였다.

[현황]

1920년대 일본이 일본인 자본에 의한 대기업 공장을 3개 만들었으나 해방 후 생산 감퇴 및 6.25전쟁으로 파괴되어 1955년경 광주시의 생산은 거의 멸실되었다. 1946년 당시 전라남도의 양잠 호수는 해방 전인 1944년에 비해 약 45%가 감소되었으며, 잠종 소립 매수도 춘·추잠 합해서 해방 전년보다 57%가 격감되었다. 1955년도 전라남도 잠업 상황을 보면 상전 면적이 4만 4552호인데 양잠 호수는 춘잠이 4만 3295가구에서 2만 1178매를 소립했으며, 추잠은 4만 927가구에서 1만 7364매를 소립했고 각각 8만 4572관과 6만 1018관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상당한 증산을 이루었다. 정부는 1차 5개년 계획[1962~1966] 중 잠업 기반을 구축하였고, 2차 5개년 계획[1967~1971]부터는 적극적 지원을 통해 야산을 개간하여 상묘를 조성하고 뽕나무를 심었다. 이때 광산군을 잠업 특설지구로 선정하여 국고 보조로 상전을 조성하고 평동면을 집중 개간하여 뽕나무를 심고 잠실을 지었다. 또한 대촌면에 상묘를 조성하여 전라남도 수요의 70%를 공급하였으며, 1968년 송정읍 신촌리에 광산 잠사를 설립하여 이곳에서 잠견을 처리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국제시장의 변동으로 생산 수출이 어렵게 되자 상전을 파헤쳐 식용작물을 심게 됨으로써 1980년에는 90% 이상이 줄어들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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