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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070
한자 白完基
영어공식명칭 Baek Wangi
이칭/별칭 백용기,강정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박찬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백완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51년 - 백완기 『신문학』 창간호 발행 겸 편집
활동 시기/일시 1954년 - 백완기 『젊은이』 발행
활동 시기/일시 1958년 - 백완기 『한국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68년 - 백완기 한국문인협회 주최 전국문인대회 참석
활동 시기/일시 1970년 12월 - 백완기 '용아박용철시비'와 '영랑김윤식시비' 건립
몰년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 백완기 사망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군 지한면
성격 문학가
성별
대표 경력 전남문인협회 초대 회장|광주로타리클럽 총재특별대표

[정의]

광주광역시 출신의 문학 평론가.

[개설]

백완기(白完基)[1914~1981]는 전라남도 광주군 지한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백용기(白龍基), 호는 강정(江庭)이다.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1950년대 『젊은이』와 『신문학』 등을 발간한 문학평론가이다.

[활동 사항]

백완기광주공립보통학교[지금의 광주서석초등학교]와 광주중학교를 거쳐 중국 만주(滿洲)의 신경법정대학(新京法政大學)을 중퇴하였다. 195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문예사조의 새로운 방향」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주로 『현대문학』에 평론을 발표하였다.

평론가로 등단하기 이전부터 광주문화사를 설립하여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문화 발전을 위해 내실 있는 문화 사업을 진행하였다. 1951년 6.25전쟁 중에 발행된 최초의 순문예지 『신문학』 창간호의 발행 겸 편집인을 맡았으며, 1954년에는 『호남공론』의 제호(題號)를 『젊은이』로 바꾸어 발행하였다. 1968년 신문학(新文學) 60년을 기념하는 한국문인협회 주최 전국문인대회에 참석하여 신석정, 김정한, 김춘수 등과 함께 「지방문단보고」를 발표하며 지방 문학과 중앙 문단과의 교류를 촉구하기도 하였다.

1970년 12월에는 한국 신시(新詩) 운동 60주년 기념 사업으로 광주·전라남도 문학인인 허연, 이동주, 범대순, 구창환, 송광헌 등과 함께 광주광역시 남구 광주공원 내에 「떠나가는 배」와 「모란이 피기까지」가 각각 새겨진 '용아박용철시비'와 '영랑김윤식시비'를 건립하였다. 아울러 일찍이 광복 후에 박용철의 유족인 임정희에게 '용아 문학상' 제정을 제의하고 함께 논의하였으며, 2017년 '용아 박용철 문학상'이 제정됨으로써 비로소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백완기호남은행의 설립자인 현준호의 사위였으며, 스스로 문화인을 자임하며 잡지 등을 간행하다 가산을 탕진하기도 하였다. 전남문인협회 초대 회장과 광주로타리클럽 사무총장과 총재특별대표 등을 역임하였으며, 1981년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백완기의 평론으로는 1958년 8월 『현대문학』에 실린 「전남문단보고: 지방문단의 현황」, 1960년 6월 『현대문학』에 실린 「작가의 모험」, 1967년 1월 『현대문학』에 실린 「주체의식 확립: 지방문단의 요망-광주」, 1969년 1월 『현대문학』에 실린 「상대성원리와 직관주의」, 1998년 『전남문학』에 실린 「비평문학의 주제와 부제」, 2004년 9월 『문학춘추』에 실린 「남도의 상상력」 등이 있다. 수양딸인 김자영의 회고에 따르면, 평론 이외에도 유도에 관한 책도 상재하였으며, 시와 소설도 창작하였는데 대부분 미발표작으로 남겼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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