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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식산은행광주지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116
한자 朝鮮殖産銀行光州支店
이칭/별칭 한국식산은행광주지점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소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8년 10월 1일연표보기 - 조선식산은행광주지점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54년 4월연표보기 - 한국식산은행광주지점 해체
개칭 시기/일시 1950년 2월연표보기 - 조선식산은행광주지점에서 한국식산은행광주지점으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9년 1월 24일 - 조선식산은행광주지점 송정리 영업소 설립
최초 설립지 조선식산은행광주지점 -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2가
성격 은행
설립자 미시마(三島太郞)

[정의]

일제 강점기 광주광역시에서 설립·운영된 조선식산은행 소속 지점.

[개설]

조선식산은행은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에 자금을 공급 및 조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1920년대 일제가 설립한 중요 산업기관의 대부분에 산업자금을 대출해주고, 중일전쟁 이후에는 채권 발행과 강제 저축을 통해 조선의 자금을 흡수하여 일본 정부와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산업 부문에 자금을 공급하였다.

[설립 목적]

조선총독부 산업정책 및 산업개발을 금융 측면에서 뒷받침할 목적으로 종래의 농공은행(農工銀行)을 통합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918년 10월 1일 대한제국 말기에 한성농공은행 등 6개의 농공은행을 합병하여 조선식산은행을 설립하였다. 1918년 10월 1일자로 광주군 광주면 북문통 31번지(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2가)에서 영업을 시작하였다. 1919년 1월 24일에는 점포를 확장하여 광주부 송정면 송정리(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리)에 광주 지점의 파출소(派出所)를 설치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50년 2월 한국식산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다가 1954년 4월 새로 설립된 한국산업은행에 모든 업무를 이관 및 자산을 양도한 후 해산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식산은행 광주지점은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남해군을 영업구역으로 하였는데, 당시 남해군의 생활권이 전라남도 동부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업실적을 살펴보면, 1924년부터 급격히 호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전 5년 동안 보통 예금이 1년에 700~800만원 수준이었으나 1,100만원에서 1,800만원으로 증가하였다. 대출금 역시 1922년과 1923년 경계로 크게 늘어나 1920년대 중반부터 광주 지역의 경제가 활기를 띠는데 영향을 미쳤다.

[현황]

해방 후 해체되어 한국산업은행이 조선식산은행을 접수하여 산업발전을 위한 금융기관이 되었다. 2009년 한국산업은행 구조 조정에 따라 한국산업은행 광주지점은 폐업되었고, 2021년 기준, 그 자리는 인근 부지와 합쳐져 대형 유통매장이 들어섰다.

[의의와 평가]

농공은행이 일본이주자들의 영농자금과 정착자금을 대주는 사금고로 전락하고, 자금이 고갈되어 대출액이 예금액을 크게 초월하는 현상이 나타나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에 차질을 받게 되었다. 산미증식계획을 위해 장기저리대출이 필요하게 된 상황에서 조선식산은행이 설립되었다. 광주농공은행의 은행장은 조선인들이었지만, 식산은행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임원들과 주주들의 의견을 묻지않고 청산을 결정하고 폐업하였다. 광주농공은행의 마지막 은행장이 조선식산은행 광주지점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긴 했지만, 명목상의 참여일 뿐이었다. 조선식산은행 광주지점의 은행장은 일본인이었고, 실제적으로 일제의 지배를 받는 금융기관으서 일본의 경제적 침략에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광주 지역에서는 1920년에 순수민족계 은행인 호남은행(湖南銀行)을 창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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