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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736
한자 鐵道開通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소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0년 10월 - 호남선 부설 공사 착수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3년 10월 1일 - 송정리~나주 구간 철도 개통, 송정리역 영업 개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4년 1월 11일 - 정읍~송정리 구간 철도 개통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4년 1월 22일 - 호남선 전통식 거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2년 7월 1일 - 송정리~광주~담양 구간 철도 개통, 광주역·극락강역 영업 개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0년 7월 1일 - 광주~여수 구간 철도 개통, 신광주역 영업 개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0년 8월 10일 - 남광주역 폐역

[정의]

일제강점기 당시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개통된 철도에 관한 역사.

[개설]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는 1910년대 철도가 개통되었다. 오늘날 광주광역시의 주요 역으로는 광주송정역, 광주역, 남광주역이 있다.

[호남선, 광주선, 광여선 개통]

곡창지대로 조선의 보고(寶庫)인 호남 지역과 수도 한성(漢成)을 잇는 호남선(湖南線)은 매우 중요한 시설이었다. 당시 대한제국의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의 자본가나 주요 인사들은 호남선을 조선 자본으로 부설하려는 노력을 상당 기간 지속하였다. 비록 일제의 방해 공작으로 인해 무위로 끝나고 말았지만, 앞서 부설된 경인선(京仁線)이나 경부선(京釜線)과 전혀 다른 시도라는 점에서 호남선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주고 있다.

1910년 10월 호남선 부설 공사가 대전과 목포에서 착수되었고, 10개 구간으로 나뉘어 공사가 진행되었다. 1911년 7월 대전~연산 구간 개통을 시작으로 연산~강경, 강경~이리, 이리~김제, 김제~정읍, 나주~학교, 학교~목포, 송정리~나주, 정읍~송정리 구간이 차례로 개통되었다. 1914년 1월 11일 대전~목포 전 구간이 4년 만에 개통되었고, 1월 22일 총 260.6㎞의 호남선 전통식(全通式)이 목포에서 거행되었다. 1914년 1월 11일 호남선 전 구간의 영업이 개시되었으나, 실제로는 1913년부터 각 노선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본선은 261.5㎞로 대전~가수원~두계~논산~강경~이리~김제~광주~송정리~영산포~목포를 통과하였다. 지선은 24.8㎞로 이리~군산을 연결하였다.

1922년 7월 1일 전남선(全南線)이 개통되었는데, 1928년 1월 1일 국유 철도로 되면서 광주선(光州線)으로 개칭하였다. 송정리~광주~담양에 이르는 구간으로, 송정리~광주 11.9㎞, 광주~담양 36㎞였다. 현재 경전선(慶全線)으로 통합되었다.

1930년 7월 1일 광주~여수 155.5㎞의 광여선(光麗線)이 개통되면서 광주의 철도 시대를 열었고, 행정 중심 도시였던 광주를 상업 도시로 변모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였다.

[광주송정역]

호남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한 송정리역[지금의 광주송정역]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 있는 역이다. 1913년 목포~송정 구간이 개통되고, 이듬해인 1914년 송정~서울 구간이 개통되면서 교통 중심지로 변모하였다. 송정리역이 들어서면서 전라남도 장흥·강진·보성 지역의 미곡을 실어 나르기 위해 신작로가 들어섰고, 미곡상·정미소·시장 등이 들어서며 상권을 형성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인들이 몰려들었고 인근 농지를 사들였다.

1917년 작성된 『광주지방사정(光州地方事情)』에 따르면, 전라남도 목포나 충청남도 대전에서 기차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자동차 2대가 광주~송정 간을 왕래하였다. 편도요금이 75전이었고, 약 20분이 소요되었다. 이 외 에 객마차(客馬車) 및 인력거가 10여 대가 있었는데 쇠바퀴 수레는 편도 35전, 고무바퀴 수레는 편도 45전으로 약 1시간이 소요되었다. 인력거 요금은 50전으로 1시간 반이 걸렸다.

2015년 4월 2일 서울~송정 간 호남고속철도[KTX]가 개통된 이후 광주광역시를 대표하는 역이 되었다.

[광주역]

광주역은 1922년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에서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고, 1969년 7월 역사(驛舍)를 신축하여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으로 이전하였다. 1922년 7월 전남철도주식회사에 의해 세워졌으며, 광주~송정리 구간 철도는 민간 철도회사인 전남철도주식회사가 부설한 사철(私鐵)인데, 남조선철도주식회사로 흡수되었다가 1928년 국철(國鐵)로 변경되며 조선총독부가 운영하게 되었다.

개통 당시 광주역으로 불리다 운영 주체가 조선총독부 철도국으로 이관되며, 1928년부터는 전남광주역(全南光州驛)으로 바뀌었다. 광주의 일본어 발음이 '고슈'인데 황해도 황주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가, 1938년 다시 개통할 때 원래의 이름이었던 광주역으로 바뀌었다.

광주역은 일제가 저지른 수탈의 현장으로, 일제강점기 초기 면화와 쌀이 광주역을 통해 빠져나갔다. 광주역이 생긴 후 한 달 만에 1000만 톤 이상의 쌀과 80톤가량의 목화가 실려 나갔으며, 당시 수백 명의 조선인들이 기차에 화물을 실어 나르는 일에 동원되었다.

[남광주역]

남광주역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있었던 역이다. 1930년 12월 25일 신광주역(新光州驛)으로 영업을 개시하였고. 1938년 4월 1일 남광주역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부근에 남광주시장이 있어서 상인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시장 부근의 소음과 매연, 진동, 교통 체증, 사고 등으로 인해 경전선 도심 철도 부지 이설로 2000년 8월 10일 폐역되었다. 이에 따라 역사도 철거되어 현재 도시철도 1호선 남광주역이 인근에 지어졌다. 곽재구가 쓴 시 「사평역에서」「사평역에서」를 바탕으로 임철우가 쓴 소설 「사평역」의 모델이 된 역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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